나에게 영화관람은 무조건 매주 한 번은 가는, 일상생활의 패턴중 하나였다. 극장의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어떤 영화든 가리지 않고 탐닉한 뒤 기록을 남기는 일.
그것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 영혼을 지탱하는 가장 규칙적인 '정서적 트레이닝'이었다. 삼류 영화의 조잡함조차 내게는 고독의 근육을 단련하는 훌륭한 기구였다.
하지만 그 견고하던 시스템에 타인의 온기가 스며든 순간,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했다.
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 건 단 네 번뿐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동행이 내가 다져온 나의 관성을 송두리째 멈춰 세웠다. 다시 혼자 극장에 가려 하니, 예매 창 앞에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혼자 영화를 보는 법을 잊은 게 아니라, 혼자 봐야만 했던 '당위'가 증발해버린 기분이다.
단 네 번의 데이터 오염이 이토록 완벽했던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당혹스럽다. 망설임 끝에 예매 창을 닫으며 나는 진짜 공포와 마주한다. 그것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도, 무너진 루틴에 대한 아쉬움도 아니다.
'나는 정말 영화를 좋아하긴 했던 걸까?' 라는 근본적인 회의다.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건 영화라는 매체가 아니라, 영화를 방패 삼아 누리던 '고독의 우월감'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 없이도 완벽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한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영화관이라는 밀실을 이용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존재가 섞이자마자 나의 취미가 그 매력을 잃어버렸다면, 그동안 내가 쓴 영화 리뷰들은 영화가 아닌 '고독을 즐기는 나'를 향한 자아도취적 기록이었을 뿐인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고독이 무너진 게 아니라, 애초에 그것이 고독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나는 혼자를 선택한 게 아니라 혼자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 '없음'을 '선택'이라 포장해온 건 아닐까.
그렇다면 수십 년간 내가 지켜온 것은 성채가 아니라 감옥이었고, 나는 간수인 동시에 죄수였다.